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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from 공부보다좋은/etc. 2012/01/14 23:45
늦었지만 즐거운 새해맞이 하셨길-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들 :)

(이 나이에 티아라; 하는 거 조금은 과하다 싶지만, 둘이 귀여우니까 그 정도는 인내하기로 했다는 ㅋ)

일 년을 또 꼬박 이스탄불 행불자로 블로그를 방치해 두기는 뭣해서 포스팅은 해야겠는데, 터키 사진 포스팅은 사진 정리가 엄두가 나지 않아서; 대신 백만 년 전 벨로언니 이 스팅을 보고 트랙백할 생각이었던 걸 이제서야 포스팅 할까 한다.

운동화는 오랫동안 나에게 수영복과 같은 존재였다. 무슨 말이냐면, 중학교 이후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대학원을 2년은 다녔을 때까지 나의 인생에는 수영복 따위는 없었다. (수영복은 결국 처음으로 캐러비언베이에 놀러가기 위해 마련했다.) 운동화는 적어도 체육 시간에는 필요에 의해 신을 수밖에 없던 터라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까만 스타킹에 하얀 양말과 하얀 운동화를  신어야만 했던 암울한 중학교 1학년 시절을 뒤로 한 이후로는 (다행히 2학년 때부터는 검정색 구두를 신을 수 있게 되었고, 스타킹을 신는 겨울에는 양말을 더 이상 덧신지 않아도 되었다) 체육 시간 이외에는 운동화를 신은 기억이 거의 없다.

고등학교를 입학하자 나는 두발 복장 자율의 세계에 입성했다. 하지만 말이 복장 자율이지, 당시 우리나라 고등학생으로서 겪는 복장 자율은 자잘한 규칙들에 의해 그 범위가 뚜렷하게 테두리 지어진  한계가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요새 중고등학생들은 훨씬 자유로운 듯?) 지금 되돌이켜 보면, 그런 규칙들이 딱히 명시되었던 것 같지도 않다. 예를 들면, 그 누구에게서도 치마는 금지 사항이라고 들은 기억은 없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암묵적으로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아무도 치마를 입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학생은 치마를 입지 말 것'과 같은 확연한 언어로 규칙을 조목조목 나열하는 공문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우스꽝스러웠으리라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여름 보충 수업 때 천진난만하게 남학생 하나가 반바지를 입고 등교해서 학생주임한테 한 소리를 듣는 일이 간혹 발생했던 듯하다. 아무도 대놓고 반바지를 입으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그저 (거의) 모든 학생들이 알아서 입고 오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여학생 신발에 있어서는 단속 초점은 굽높이로 기억된다. (그래서 대학 입학하기 직전 봄방학에 그 준비 과정 중 뚜렷하게 기억나는 한 가지는 고등학교 때는 신을 수 없었던 6센치 굽의 구두를  사러 간 일 - 학기중에는 굽 없는 신발로만 일관하는 요즘 같아선, 그걸 신고 도대체 어떻게 매일같이 문과대 언덕을 올랐는지 기특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_=) 고3으로 올라가면서 체육 시간은 점점 자율학습화되어 필요에 의해서 운동화를 신을 일조차 드물어졌고, 쉬는 시간에 구두 신고 고무줄 했던 기억도 똑똑히 난다.

그렇게 해서 체육 시간이 없는 대학에 이르러서 나는 운동화를 신을 일이 아예 없어졌다. 게다가 당시 대세였던 통바지 패션은 일반인에 있어서는 운동화와 같은 굽 없는 신발을 허락치 않았다. (안 그래도 짜리몽땅한 거, 통바지에 겁없이 운동화 신어서 더 짜리몽땅해 보일 일이 뭐가 있겠냐고 -_-;) 물론 운동화를 활용하는 대안 패션이 있기는 했다.

그것은 바로-

 그래서 나는 꽤나 오랫동안 운동화를 신을 일도, 살 일도 없었다.

그랬었는데 최근 몇 년간 나에게도 야금야금 운동화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더 이상 사면 안 될 지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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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벤시몽 운동화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포스팅인데, 결국 산으로 가고 말았네 ㅋ
이날은 일명 키드님 신발마저도 슬펐던 그날 ^^;; (미안해요 키드님 ㅠ_ㅠ)

명동 같은 탁심 광장(Taksim Square)의 한 디저트 가게 앞 - 얼굴도 안 보이는데 괜히 맘에 드는 사진


  사태의 경위를 설명하자면, UCSD 교환학생 시절 기숙사 아파트에서 네 명이 함께 살았는데 그 중 한 명이 터키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교환학생을 온 에스라양이었다. (이제 보니 나의 부정확한 발음으로 인해 다들 이름을 '에스트라'로 잘못 알고 있었네 =_=) 그녀는 나보다 한 살 많았지만, 나보다 두 살 어린 우리와 함께 살았던 두 명의 미국 아이들에 비해 우리 딴에는 (지금 내가 보기엔 다 도토리 키재기 같지만 ㅋ) 우리가 정신적 성숙도가 한층 높다는 판단 아래 매우 친하게 지냈다. 어떻게 생각하면 같이 한 시간은 고작 일 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일 년을 같이 산다는 건 그저 알고 지낸 시간과는 차원이 또 다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같은 공간에 있는 친구 만나는 건 잘하는 반면, 메일 답장은 정말 못한다;  그동안 간간이 연락을 해왔으나 제대로 된 메일은 쓴지 어언 5년은 된 것 같아서 막상 연락을 하려니 메일을 뭔가 잘 써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ㅠ_ㅠ 더군다나 5년 전쯤 그녀가 나와 또 당시에 친했던 다른 한 명에게 함께 이탈리아에 여행을 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었는데, 한참 대학원 수업 삽질을 하던 때이기도 했고 나의 인도 대모험 이전 시절이라 그런 대대적인 '여행' 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다. (대학교 내내 스스로는 엠티 이상 규모의 여행 따위는 단 한 번도 다녀온 적이 없었던 나 -_-v) 그 메일에도 아마 나는 희미하게 답장을 안 하거나 뒤늦게 한 달 뒤쯤 하는 걸로 일단락된 것에 대해 여전히 딴에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터라 선뜻 메일을 보내지 못하고;

그리하여 6월말에 이스탄불행 비행기표를 사 놓고도 한 달 내내 메일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버티고 안 썼다. 그러다 8월이 되니 터키로 출발하는 날짜가 2주도 안 남았어! 그래도 거기까지 갔는데! 순전히 밍기적대느라 연락 안 해서 나중에라도 나 이스탄불까지 갔었다는 사실을 평생 숨기고 다닐 수도 없고, 행여나 어쩌다 얘기라도 나오면 나는 정말 에스라양에게 할 말이 없겠다는 급박한 생각에 급기야 메일을 썼다.

결국 그렇게 급박하게 연락이 돼서 내가 이스탄불에 도착한 날까지도 에스라와 약속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사태는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던 게다 =_=

내가 조금만 더 계획적인 인간이었더라면 (가령 롤빗 두 개 챙겨 다니는 미어언니처럼 ㅋ) 에스라양에게 훨씬 미리 연락을 해서 그녀의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한 후, 언니들과 상의해서 내가 없을 때 저들이 블루모스크처럼 꼭 봐야 하는 곳들을 미리 봐 놨더라면, 이날 나만 에스라양과 다녔던가 적어도 하루 종일 함께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키드님이 그렇게 괴로울 줄 알았으면 ㅠ_ㅠ

안 그래도 오기 직전 누군가와 얘기하는데 (누구더라?;) 이스탄불에 친구가 있어서 만날지도 모른다는 말에 그 친구가 가이드해줄 수도 있고 좋겠다는 반응에, 음 그런데 그들은 영어를 하기 싫어하지 않을까; 이 생각까지는 했는데 대인 기피 기질까지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나의 불찰이었다. ㅠ_ㅠ 사실 과 특성상 한국 유학생을 많이 볼 일은 없지만 (그들은 대체로 공대나 주로 숫자를 다루는 과에 몰려 있는 편이어서) 여느 자리에 외국인 한 명이라도 끼면 영어를 해야 하는 걸 불편해하는 걸 종종 봐와서 얼핏 그 생각까지는 했었는데. 다시 한 번 나의 방만한 무계획성을 반성해 본다 ㅠ_ㅠ

이날 우리는 돌마바흐체 궁전, 블루모스크, 그리고 오르트쾨이를 둘러봤는데, 키드님이 이미 상세하게 후기를 썼고. 내가 보탤 수 있는 건 약간의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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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물 사진은 여기 클릭-